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30대 미혼 자녀들이 더 이상 드문 현상이 아니게 된 시대다. 과거에는 독립하지 않은 성인이면 “철이 덜 들었다”거나 “게으르다”는 식의 사회적 낙인이 따라붙었지만, 오늘날엔 오히려 “그럴 수밖에 없다”는 공감의 분위기가 더 익숙하다. 실제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대한민국 20대 청년 중 약 70%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며, 30대 미혼자의 20% 이상도 여전히 부모에게 주거와 생활비를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도대체 무엇이 청년들의 자립을 가로막고 있는가?
‘자립’이란 단어는 우리 사회에서 개인의 성숙함, 독립된 생활, 경제적 자율성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동반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청년들에게 자립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이 되고 있다. 특히 부모 세대와 달리 안정적인 정규직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현실, 임금 상승의 정체, 높은 주거비, 불안정한 고용구조는 자립의 가능성을 점점 더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 현상의 근저에는 한 세대를 관통하는 거대한 구조적 변화, 즉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잃어버린 세대’라는 표현은 원래 1차 세계대전 이후 환멸과 허무주의에 젖은 미국 지식계층을 지칭한 문화적 용어였지만, 현대에는 심각한 경기침체 속에 사회에 진입한 세대가 평생 회복하지 못하는 경제적 상처를 의미한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취업빙하기 세대(就職氷河期世代)’라고 불렀고, 19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장기불황과 구조적 고용 변화 속에 사회로 나온 젊은이들을 지칭한다. 이들은 고용 불안정, 저임금, 낮은 직장 이동 가능성, 미래의 빈곤이라는 4중고를 겪었으며, 결과적으로 오늘날 일본의 빈곤 고령화 문제를 심화시킨 핵심 세대가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비슷한 현상을 한국에서도 목격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고용지표가 급속히 악화되기 시작했다. 청년실업률은 두 자릿수를 넘나들며, 대졸 초임은 10년 넘게 정체되어 있다. 특히 대졸 이상의 청년들조차 실업 또는 비정규직 상태를 장기간 겪으면서 ‘취업의 지연’은 곧 ‘삶의 지연’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결혼은 미뤄지고, 자녀 출산은 포기되며, 자립은 더 이상 모든 청년에게 주어진 전제조건이 닌 ‘특권’이 되었다.
우리는 이제 이 질문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왜 많은 청년들은 자립하지 못하는가?
그들의 무능력 때문인가, 아니면 사회가 이들을 포기했기 때문인가?
이 글에서는 ‘부모와 함께 사는 30대’라는 현상 이면의 구조적 원인을 탐색하고자 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가 보여준 사회적 파급 효과를 분석하고, 한국 청년들이 처한 고용환경과 임금 구조, 사회보장제도의 취약성, 그리고 세대 간의 전가되는 부담까지 살펴보며, 이 문제가 노동시장과 경제구조의 경직성에서 비롯된 심각한 사회 문제임을 밝혀보고자 한다.
청년들이 자립하지 못하는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다시말해 미래세대에 대한 신뢰와 책임이 결여된 구조적 실패의 반증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들 중 일부는 그저 편의와 가족 유대의 차원에서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선택이 어쩔 수 없는 생존의 방식이 되었을 때, 우리는 마주 앉아 질문해야 한다. 청년의 삶이 이렇게까지 힘들어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1. 취업의 시작부터 달랐다
청년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출발선에 서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과거 부모 세대는 대부분 대학을 졸업하면 비교적 빠르게 취업하고, 정규직이라는 안정적인 고용 지위를 기반으로 삶을 설계해나갈 수 있었다. 당시에는 한 직장에서 장기근속하며 임금이 자연스럽게 상승하는 경로가 보편적이었고, 결혼이나 주택 마련도 어느 정도의 계획 하에 실현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청년들의 현실은 이와는 현격하게 다르다. 졸업 이후 취업 자체가 어려워졌을 뿐만아니라, 운 좋게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고용 형태는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 인턴, 프리랜서, 파트타임으로 한정되며, 임금 수준 역시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벅찬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는 고용 시장의 구조적 전환이 있다.
기업들은 과거와 같은 ‘채용 후 교육’ 모델에서 ‘즉시 전력화’ 가능한 인재만을 선호하는 방식으로 채용 기조를 바꾸었고, 경험이 없는 청년들에게는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청년들에게 요구되는 스펙은 해마다 높아지지만, 스펙을 쌓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은 오히려 경제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만든다. 이처럼 청년들은 사회 진입 시점부터 다층적인 불리함 속에 놓이게 된다.
더욱 큰 문제는 이와 같은 진입 실패가 단기적인 손실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낙인효과(scarring effect)’라고 불리는 구조적 현상은, 청년기에 실업을 경험한 이들이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정을 겪게 되는 경향을 설명한다. 실업 경험은 경력 공백으로 간주되어 이후 취업 기회에서 불이익을 가져올 뿐만아니라, 직무 기술 습득과 경력 관리의 기회를 박탈당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평생 임금 수준의 격차로 이어지게 된다.
LG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대학 졸업 이후 1년 이내에 실업을 경험한 청년들은 바로 취업한 동료들에 비해 평균적으로 약 9.8% 낮은 임금을 받았으며, 실업 기간이 4년에 달할 경우 임금은 무려 40% 가까이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며, 국가 전체의 노동투입 감소, 생산성 하락, 사회보장 지출의 증가로까지 이어지는 장기적인 구조 문제를 야기한다.
문제는 이 낙인효과가 고용의 질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다. 한국의 청년들은 근속 연수가 짧고 임금 상승 속도가 낮은 비정규직 일자리에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후 정규직 전환의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기업은 신규 인력 채용 시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선호하고 있으며, 청년들은 스스로의 미래를 위해 안정적 일자리를 원하지만 선택지는 제한되어 있다. 이처럼 비정규직으로 시작된 경력은 ‘비정규직 경력은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회적 인식과 실제 인사 구조에 의해 정규직으로의 이동성을 심각하게 제한받는다. 결과적으로 청년들은 한 번 진입한 불안정 고용 구조에서 벗어나기 어려워지고, 그 경력 경로의 한계는 평생 소득과 복지 접근성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현상은 시장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한국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매우 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차이 역시 극심하다. 청년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장기간의 구직 활동을 감수하는 것도, 아무 일자리가 아닌 ‘좋은 일자리’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장기간의 실업 상태에 놓이고, 이 실업이 다시 그들의 경력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낙인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고용에 진입하지 못한 청년들이 생계를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일은 대부분 일용직, 아르바이트, 단기 계약직과 같은 저임금, 저숙련, 저안정 직종에 한정되어 있다.
청년들이 비정규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한 직장에서의 경력을 지속적으로 쌓지 못하는 구조도 문제다. 기업은 교육과 훈련에 투자하기보다 즉시 활용 가능한 노동력을 원하고, 이에 따라 청년 근로자에 대한 사내 교육 기회조차 줄어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인적자본의 축적 기회를 상실하게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노동시장의 전체 역량을 저하시킨다. 일본의 사례에서 보듯, 취업 빙하기 세대가 기업 내에서 충분한 기술 전수를 받지 못한 결과, 생산성과 조직 충성도가 모두 낮은 세대로 고착된 현상이 한국에서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청년들이 첫 직장에서 이직하지 않는 경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것도 주목해야 할 변화다. 도전정신의 부족이나 성향의 문제라기보다, 이직 자체가 더 나은 경력으로 이어지지 않는 구조 속에서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비정규직 경력은 타사 이직 시에도 불리하게 작용하며, 새롭게 도전하기보다는 현재의 불안정한 자리를 지키는 것이 더 안전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지고 있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이동성을 낮추고, 결과적으로 경제 전체의 역동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청년의 실업, 비정규직 경험, 경력 단절, 기술 축적 기회의 부족, 장기적 소득 손실은 단절된 요소가 아니다. 이 모든 요소는 서로 얽혀 있으며, 하나의 연쇄 고리처럼 작동한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은 패배가 내재된 구조적 진입점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구조 속에서 청년들이 ‘노력’과 ‘도전’만으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은, 실제 통계와 구조적 현실을 무시한 무책임한 낙관주의에 불과하다.
2. 10년 정체된 임금 – 자립을 불가능하게 만든 소득 현실
취업의 문턱을 넘었다고 해서 청년의 삶이 곧바로 안정되는 것은 아니다. 최근 10여 년간 청년들이 체감하는 현실은 더욱 명확하다. 일자리를 얻어도 그 일자리가 독립과 자립을 가능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고용은 생계를 유지하는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의 청년들이 겪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자립이 불가능한 임금의 구조적 정체가 그것이다.
통계에 따르면 대졸 초임은 지난 10년 동안 실질적으로 거의 변화가 없었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실질 임금으로 보면, 2006년과 2020년의 대졸 초임은 거의 같은 수준이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 시기 동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의 평균 원룸 월세는 2배 가까이 상승했고, 식비, 교통비, 통신비 등 생활 필수 지출 항목들은 줄줄이 인상되었지만, 청년들의 월급은 여전히 200만 원 초중반에 머물러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임금 구조 속에서 청년이 월세를 감당하고, 생활비를 지출하고, 미래를 준비할 여유까지 갖추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월급의 절반을 주거비로 지출해야 한다면, 남는 금액으로는 저축도, 자산 형성도, 교육 투자도, 결혼 준비도 어렵다. 그러다 보니 청년들은 자연스럽게 부모의 집에 머물게 되고, 독립을 미루는 선택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선택이라기보다는 환경이 강요한 생존 방식에 가깝다. 소득의 여유가 없는 삶은 결국 모든 결정에서 소극적인 자세를 만들게 되며, 이로 인해 청년들의 사회적 진입, 결혼과 출산, 소비와 투자까지 줄줄이 축소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저임금 구조가 단기적인 현상으로 볼 수 없다는 점이다. 수년 동안 청년들의 임금 상승률은 전체 평균 임금 상승률보다 낮았다. 노동시장에 진입하자마자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인턴, 파견직 등으로 시작하는 청년들의 상당수는 낮은 임금에서 출발해도, 몇 년 후 정규직 전환이 되거나 급격한 임금 인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근속 기간이 길어져도 고용 불안정성과 임금 정체는 여전하고, 이 문제는 생활의 질은 물론 미래 계획의 수립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청년층에서 워킹 푸어(working poor) 현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것도 이러한 구조에서 비롯된다. 일은 하고 있지만 가난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근로자의 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60% 수준에 불과하며, 청년층에서 비정규직 비율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아르바이트나 단기 계약직이 반복되는 구조 속에서 청년들은 장기적으로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연봉의 지속적 상승 역시 요원한 일이다. 게다가 많은 청년들이 이러한 고용 형태 때문에 국민연금, 건강보험, 퇴직금 등의 사회보장 혜택에서도 배제되기 쉬워 장기적인 경제 안정성은 더욱 취약해진다. 이런 상태에서 자립은 물론이고, 노후 준비나 가족 부양까지 생각하기에는 현실의 장벽이 너무도 높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는 여전히 극심하고,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지역 임금 차이도 상당하다. 청년들이 일자리 자체보다 ‘좋은 일자리’를 찾는 이유는 이러한 격차가 평생 소득에 미치는 영향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좋은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고, 경쟁은 치열하며, 그 자리를 얻기 위해 더 많은 스펙을 요구받는다. 그 과정에서 청년들은 졸업을 미루고, 유학을 선택하며,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을 투자하지만, 정작 그 투자가 소득으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면 청년들은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구조’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포기와 체념은 점차 일반화되고, 자립은 이상이 아닌 사치가 된다. 한국 사회에서 청년의 자립은 이제 ‘적정한 소득을 전제로 한 독립’보다는 ‘부모의 자산과 지원 여부에 따라 달라지는 선택지’로 전락했다. 특히 자산 격차가 소득 격차로 이어지고, 소득 격차가 생활 수준과 기회 격차를 심화시키는 현실에서는 청년 개개인의 의지만으로는 자립을 실현할 수 없다.
또한 임금 정체는 소비 감소로 이어지며, 내수시장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청년 소비층의 축소는 문화 산업, 외식, 관광, 유통 등 다양한 영역에서 수요 둔화를 가져오고, 다시 기업의 투자 축소, 고용 위축, 경기 침체라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청년이 소비하지 않는 사회, 청년이 결혼하지 않는 사회, 청년이 자녀를 낳지 않는 사회는 개인 보다는 구조적 제약이 만들어낸 필연적인 결과다.
결국 문제는 ‘청년의 임금이 낮다’는 것이 아닌, 지금의 소득 구조로는 청년이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반 자체를 제거한 상태라는 것이다. 주거는 감당할 수 없고, 저축은 불가능하며, 미래 계획은 설 자리가 없다. 삶의 기본이 되는 경제적 조건이 무너진 사회에서 자립을 기대하는 것은 설계되지 않은 사다리를 오르라는 것과 같다.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개척할 수 있으려면, 사회는 그들이 최소한의 기반 위에서 시작할 수 있도록 ‘기회의 평등’과 ‘구조의 복원’을 제공해야 한다. 그 시작은 바로 제대로 된 임금 구조, 청년이 스스로 설계할 수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고용 생태계에서 출발해야 한다.
3. 부모와 동거하는 30대 – 자립 실패의 현실
자립이란 단어는 더 이상 청년들에게 자연스러운 삶의 단계로 여겨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의 청년들에게 자립은 생애 주기 중에서 가장 불확실하고 실현 불가능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 변화는 구체적인 생활방식의 변화로 나타나고 있으며, 그 중 가장 뚜렷한 지표는 바로 부모와 동거하는 청년의 증가다. 청년층에서 자립이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은 다양한 통계 지표에서도 명확히 드러난다. 특히 20대에서 30대 초반까지 부모와 함께 사는 미혼 자녀의 비율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사실은, 청년 자립 실패가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지속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임을 강하게 시사한다.
결혼 안 한 30대 '캥거루족' 54.8%…"부모에게서 독립 못해
통계청의 장기 마이크로데이터에 따르면,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20대 중 부모와 함께 사는 비중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으나,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 수치는 약 70% 수준까지 상승했다. 더욱 우려스러운 변화는 30대 초반에서도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30대가 되면 대부분 독립해 나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 들어서는 30대 미혼자의 약 20% 이상이 여전히 부모와 동거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5명 중 1명 이상이 독립하지 못한 채 가족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사회 진입과 자산 축적이 뒤처진 채 중년기에 접어들고 있는 세대의 실태를 보여준다.
이러한 변화는 자발적인 ‘가족 중심적 가치관’이나 가족애의 강화 같은 문화적 요인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실제로 많은 청년들이 독립을 원하지만 경제적 현실이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월세 부담은 실질임금에 비해 훨씬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며, 독립을 위해 지출해야 하는 비용은 식비, 교통비, 통신비, 보증금, 이사 비용 등 필수 지출만으로도 월급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대졸 초임이 200만 원대 초중반에 머물러 있는 상황에서 자립은 포기의 대상이 되고 있다. 독립하겠다는 이유로 감수해야 할 금전적, 심리적 리스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부모와의 동거를 생존 전략으로 채택하게 된다.
30대 초반의 경우, 직장 경력 5~7년차에 해당하므로 본래라면 자산을 축적하고 미래를 계획해야 할 시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자산은커녕 결혼, 출산, 주택 구입 등 인생의 주요 이정표를 차례로 포기하게 된다. 부모 집에서 머무는 30대는 자산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비공식 복지 구조에 편입된 상태라고도 볼 수 있다. 부모와의 동거는 사적 부양체계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청년의 생활은 일정 수준 유지되지만, 그 자체로 경제적 자립은 지연되고 있다.
또한 부모 세대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삶은 장기적으로 양 세대 모두에게 부담을 남긴다. 부모는 은퇴를 준비해야 할 시점에 자녀의 주거비, 결혼 자금, 생계비 지원을 계속 이어가고 있고, 자녀는 그 지원 없이는 기본적인 생활 유지가 어렵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자립할 계기를 만들지 못한다. 현재 50~60대 부모 세대는 다수 자영업자이거나 국민연금 외에 별도의 노후 자산이 부족한 상태이며, 정년 퇴직 후에도 계속 일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청년의 자립은 늦어지고, 부모의 노후는 불안정해지며, 결국 가족 단위의 복지 구조가 파탄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문제는 이 현상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일반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독립은 점점 더 소수만의 특권이 되고 있으며, 자립은 부모의 자산 여부에 따라 가능성이 결정된다. 곧 청년의 삶에서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배경'이 결정적인 변수가 된다는 것을 뜻하며, 세대 간 불평등은 물론, 계층 이동 가능성까지 위협하는 중요한 구조적 문제로 이어진다. 자산 축적이 어려운 청년들은 신용점수 상승도 어렵고, 대출 심사에서도 불리하며, 사회 진입 자체가 늦어지기 때문에 전반적인 경제활동의 시작 지점이 미뤄진다. 특히 부모의 자산이 충분하지 않은 계층에서는 자녀의 독립이 불가능해지며, 곧 '빈곤의 세습'과 같은 결과를 낳는다.
청년들이 독립하지 못하는 구조는 국가의 문제다. 주거비, 고용, 임금, 교육, 복지의 모든 요소가 얽혀 있는 복합적 구조에서, 청년 개인에게 ‘독립하지 않은 책임’을 묻는 것은 부당하다. 오히려 사회가 책임져야 할 것은 이들이 독립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일이다. 청년들이 독립적인 삶을 꾸려나갈 수 있어야 결혼과 출산, 소비와 사회적 관계 형성이 가능해지며, 이것이 곧 사회 전체의 활력을 유지하는 조건이 된다.
지금 우리는 청년의 자립 실패를 개인의 문제로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이를 사회 구조의 실패로 인식하고 적극적인 개입에 나설 것인가라는 기로에 서 있다. 자립하지 못한 30대는 미래의 복지수급자이며, 지금 청년이 경제적 주체가 되지 못하면 10년 후 그들의 부모 세대까지 함께 빈곤화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고, 동거라는 표면적 현상 이면에는 국가적 복지 시스템의 사각지대가 자리잡고 있다. 부모와 함께 사는 30대는 사회가 기회를 주지 않은 세대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구조를 복원하는 일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되었다.
4. 결혼, 출산, 소비의 포기 – 사회 전체가 치르는 대가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하지 못하는 사회에서 가장 먼저 포기되는 것은 삶의 확장에 해당하는 선택들이다. 취업과 주거, 생계 유지조차 불안정한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 소비와 같은 행위는 더 이상 일상적인 선택지가 아니다. 이러한 선택은 충분한 자원과 예측 가능한 미래가 전제되어야 가능한데, 지금 청년 세대에게 그 전제는 결여되어 있다. 그래서 청년들은 한때 당연하게 여겨졌던 삶의 경로를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는 개인의 행복 감소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곧 사회 전체의 구조와 기능에 영향을 미치는 심대한 파급효과로 이어지며, 포기된 삶의 조각들은 결국 사회가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비용으로 되돌아온다.
가장 먼저 결혼을 살펴보면, 지금의 청년들에게 결혼은 '하고 싶은' 것이라기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결혼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주거 안정성과 고용 기반, 그리고 미래 소득에 대한 예측 가능성이 필요하지만, 오늘날의 청년들이 그것을 갖추기는 매우 어렵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혼인 건수는 매년 최저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특히 30대 초반 남성의 초혼율은 불과 1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결혼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는 소득 부족과 불안정한 직장, 주거 비용 부담으로 나타난다.
다시말해, 개인적 성향의 변화라기보다는 구조적으로 ‘결혼이 불가능한 사회’가 된 것이다.
결혼이 늦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으면 당연히 출산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합계출산율은 2023년 기준 0.72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다. 이 수치는 저출산 또는 초저출산, 다시 말해 인구 유지가 불가능한 절대적인 수준의 감소를 의미한다. 청년들이 출산을 회피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위해 필요한 양육비, 교육비, 주거 안정, 육아휴직과 같은 제도적 보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청년들이 아직 자신의 삶조차 안정적으로 설계하지 못한 상태에서 타인의 삶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리게 되며, 그 결과 출산은 점점 더 먼 선택지가 된다. 이처럼 출산율의 하락은 청년 개개인의 생애 설계의 기반 자체가 무너진 구조적 결과임을 확인할 수 있다.
소비의 위축도 매우 중요한 신호다.
과거 청년층은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고, 문화 산업과 내수 경제의 핵심 소비계층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최근 청년들은 기본적인 생계 외에 여가나 취향, 여유를 위한 소비를 점점 줄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절약의 문제가 아닌, 소비할 수 있는 가처분 소득 자체가 부족한 상황에서 선택의 여지가 줄어든 결과다. LG경제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30대 가구의 소비성향은 2010년대 이후 뚜렷하게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자동차, 가전 등 내구재에 대한 소비는 20~30대에서 가장 크게 감소했다. 이 같은 소비 위축은 곧장 기업의 매출 감소로 이어지고, 내수 기반이 약화되며 경기 순환의 탄력이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러한 개인의 포기는 사회 전체의 비용으로 환산된다. 우선 출산율 감소는 인구구조의 불균형을 심화시키고, 생산가능인구의 축소로 이어지며 잠재성장률을 저하시킨다. 실제로 한국은 2020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하는 국면에 접어들었고, 통계청은 앞으로 10년 내에 노동인구가 급감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경제의 전체적인 활력이 줄어들고, 산업 전반에서 인력 부족 현상이 심화될 것이다. 동시에 연금, 건강보험, 기초생활보장 등 사회보장제도의 유지에 필요한 재정의 기반도 흔들리게 된다. 현행 구조는 다수의 생산 인구가 소수의 고령 인구를 지탱하는 방식인데, 청년층이 줄고 고령 인구가 늘어날 경우 이 시스템은 지속 불가능해진다.
소비 위축 또한 장기적으로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준다. 소비가 줄면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 수입이 감소하고, 내수 경기 부진은 고용 축소와 세수 저하로 이어지며, 다시 청년 일자리 감소라는 악순환을 유발한다. 더욱이 청년들이 자산을 형성하지 못한 채 나이 들면, 미래에는 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곧 공공재정의 지출 부담으로 이어지며, 국민 전체가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환산된다. 포기한 소비는 국가 전체의 생산과 유통, 금융 시스템에도 연쇄 충격을 가하며, 사회 전체의 활력과 안정성, 신뢰 기반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포기하고 있다는 이유로 무책임하다는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 오히려 사회가 제공해야 할 기회의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청년들에게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고, 소비를 줄이는 청년들의 행위는 구조적 강제에 가까우며, 즉, 한 세대의 문제를 넘어 대한민국 전체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중대한 경고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청년 개인의 태도를 논하기보다, 이들이 삶의 주요 선택을 할 수 없게 만든 구조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 확대, 실질적인 주거 지원, 육아 인프라 확충, 청년 기본소득과 같은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만, 이들은 다시 선택할 수 있는 자격을 회복할 수 있다.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선택이 가능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사회만이 청년을 살리고, 청년이 살아야 사회 전체가 살아날 수 있다. 지금 청년들이 포기한 것들의 대가는 결국 우리가 함께 짊어져야 할 사회의 비용이다.
5. 무엇이 이들을 구할 수 있을까 – 정책의 방향과 사회적 책임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청년들이 사회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은 경기순환의 일시적 현상이 아니며,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장애물에 뿌리를 두고 있다. 취업의 시작부터 이미 낙인효과의 위험에 노출되고, 임금은 장기간 정체되어 있으며, 자립의 조건이 무너진 현실에서 결혼, 출산, 소비까지 줄줄이 포기되고 있는 상황은 어느 한 요소의 개별적 조정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이 문제는 일자리, 주거, 복지, 교육, 금융, 문화 등 사회 전반의 시스템이 불균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이며, 국가와 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구조적 개입을 해나갈 것인가가 핵심이 되어야 한다.
우선, 고용시장에 대한 개혁적 접근이 절실하다. 청년들이 불안정한 고용상태로 사회에 진입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양적 고용 확대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고용의 질적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비정규직의 처우 개선과 사회보장 접근권 강화가 병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중소기업과 대기업 간 임금 격차를 완화하고, 청년이 선호하는 기업 유형이 아니더라도 경력 개발과 승진 기회가 열려 있다는 신뢰를 제공하는 고용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산업정책 또한 청년 고용을 중심에 놓고 설계되어야 하며, 기술 중심 산업과 지역 균형 발전 전략이 함께 구동되어야 지역 청년들의 탈이주를 막을 수 있다.
고용과 더불어 가장 시급한 정책 영역은 주거다. 자립의 가장 큰 장애물로 작용하는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국가 차원의 대책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현재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인 청년 월세 지원이나 역세권 청년주택 정책은 중요한 시도이지만, 그 규모와 접근성 면에서 여전히 제한적이다.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공공임대 확대, 청년 전용 보증금 대출 제도 개선, 원가 기반의 청년 주택공급 등 보다 보편적이고 장기적인 주거정책이 필요하다. 주거는 개인의 삶의 질과 독립성, 사회적 정체성과 연결되는 핵심 기반이기 때문이다.
복지 제도 전반의 청년 접근성도 높여야 한다. 지금까지의 복지정책은 취약계층, 노인, 아동 중심으로 설계되어 왔으며, 청년은 상대적으로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 청년들은 취업준비, 고용불안, 주거불안, 부채, 건강 문제 등 다양한 영역에서 복합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단일 기준의 소득 지원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 따라서 청년복지는 단기 현금 지원을 넘어, 경험과 기회를 제공하는 구조적 지원체계로 확장되어야 한다. 예컨대 청년 기본소득제 도입, 사회적 일자리와의 연계, 직무교육과 일-학습 병행형 제도의 확대, 사회진입자금 같은 구조적 자산 형성 제도가 필요하다. 특히 자산 기반이 취약한 청년에게는 소득 보전보다 기회의 자본을 제공하는 방식의 복지가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금융 영역에서도 청년을 위한 적극적인 정책 전환이 요구된다. 학자금 대출, 신용점수, 보증금 대출 등은 청년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다. 그러나 현재의 금융 제도는 정규직 중심, 고소득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어 청년들의 실제 금융 접근성을 제한한다. 보다 유연한 상환 조건, 일정 기간 무이자 유예, 금융교육 연계 등을 통해 금융이 청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수단이 되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 가족 형성을 지원하는 인프라도 구조적으로 변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출산 장려금 중심의 일회성 지원이나 이벤트성 정책만으로는 청년의 생애 설계를 바꿀 수 없다. 무엇보다 육아 인프라의 공공성 확대, 남녀 모두에게 공평한 육아휴직 권리 보장, 경력 단절 방지 정책 강화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더불어 결혼과 출산이 가능성으로 여겨질 수 있도록, 사회 전반에 걸친 인식 개선과 함께, 가정 중심의 삶이 여전히 가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청년을 정책의 주체로 인식하는 전환이다. 지금까지의 청년정책은 청년을 지원 대상, 보호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에서 설계된 경우가 많았지만, 청년은 사회 변화의 중심에 있는 능동적 주체이며, 동등한 시민이다. 이들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함께 '설계'하고, 그 과정에 참여시켜야만 정책의 지속가능성과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다. 청년이 직접 정책을 제안하고 평가하며, 그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구조적 참여 시스템이 강화되어야 한다.
이러한 전방위적인 구조 개편이 이뤄지지 않는 한, 청년의 자립은 앞으로도 계속 지연될 것이며, 그에 따른 사회 전체의 부담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무겁고 복잡해질 것이다. 청년을 위한 정책은 결코 청년만을 위한 정책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가 미래를 유지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며, 지속 가능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실천이다. 청년을 살리는 일은 곧 대한민국을 살리는 일이며, 이제는 생존의 전제가 되었다. 청년이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선택을 감행할 수 있는 사회,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그것이 오늘 우리 사회가 반드시 감당해야 할 책임이다.
‘부모와 함께 사는 30대’를 만든 것은 누구인가
부모와 함께 사는 30대가 늘고 있다는 통계는 생활 방식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청년들에게 어떤 환경을 제공해왔는지를 가장 직설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이며, 동시에 사회 전체가 직면한 시스템적 위기의 거울이다. 과거에는 청년이 성인이 되는 길목에서 취업, 독립, 결혼, 자산 형성, 가족 구성이라는 일련의 삶의 경로를 비교적 예측 가능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청년들은 이 경로의 거의 모든 구간에서 막힘과 지연, 중단의 경험을 반복하고 있다. 그리고 그 결과는 30대가 되어서도 부모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들이 자립하지 못한 것은 게으름도, 무책임도 아니다.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고용의 불안정성과 저임금 구조, 비정규직의 확산은 경제적 독립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주거 비용과 생활비 부담은 자산 축적은커녕 현재의 생존조차 위태롭게 만든다. 취업에 실패하면 낙인효과로 인해 노동시장에 재진입하기 어려워지고, 장기 실업은 자존감 저하와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진다. 부모의 도움 없이 독립을 유지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청년은 자립이라는 이상을 지우고 현실의 생존을 택한다. 결국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경제적 자구책이 바로 부모와의 동거인 것이다.
이처럼 청년들이 구조적으로 사회 진입에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은 청년 개인보다는 국가와 사회 전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문제이다. 청년 한 사람이 취업에 실패하고, 자산을 쌓지 못하고, 자녀를 낳지 못하는 일은 그저 하나의 개인사가 아닌, 국가의 인구구조, 재정지출, 경제 성장률, 사회적 신뢰 체계, 세대 간 관계에까지 파장을 미치는 일이다. 청년들이 포기한 결혼과 출산은 인구 감소로 이어지고, 줄어든 소비는 내수 기반의 위축으로 연결되며, 일자리 부족과 주거비 부담은 사회 전체의 불안과 분열을 심화시킨다. 우리가 오늘 청년의 삶을 방치한다면, 내일은 노년층 복지 재정이 무너지고, 노동력이 고갈되고, 신뢰 기반이 붕괴된 사회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필요한 것은 청년 개인의 책임론이 아니다. 진짜 필요한 것은 청년이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자립을 요구하기 전에 자립이 가능한 조건을 제공하고, 결혼과 출산을 독려하기 전에 그것이 지속 가능한 선택이 되도록 만들며, 소비를 기대하기 전에 소비할 수 있는 임금과 시간, 안전망을 먼저 제공해야 한다. 청년의 삶을 지탱하는 기반이 무너진 상태에서 그들에게 어떤 책임을 묻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 무엇보다 청년을 다시 삶의 주체로 세우기 위해서는 기회의 총량을 늘리고, 자산 형성의 격차를 줄이며, 일자리의 질과 임금의 수준을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접근이 필요하다.
사회는 더 이상 청년에게 “왜 노력하지 않느냐”고 묻기보다, “우리는 당신이 노력할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제공하고 있느냐”를 돌아봐야 한다. 청년에게 요구하기 전에, 청년을 위한 정책의 질을 되묻고, 제도의 범위를 재설계하며, 자립의 사다리가 끊긴 사회에서 다시 그 연결고리를 복원할 수 있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교육에서부터 고용, 주거, 금융, 복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정책 영역에서 청년이 변화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개편하고, 사회 전반에 걸쳐 청년을 위한 구조적 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청년 스스로에게도 이 메시지는 전해져야 한다. 지금 겪고 있는 좌절은 당신 개인의 실패가 아니다. 오히려 이 사회가 청년들에게 기대만큼의 조건을 제공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공동의 실패이며, 그것은 우리가 함께 해결해야 할 몫이다. 우리는 더 이상 청년을 ‘미래의 주역’으로만 치켜세우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이 사회의 구성원이며, 시민이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오늘의 사람들이다. 지금의 청년을 온전히 살게 하지 못하면, 그 사회는 미래조차 가질 수 없다.
결국 부모와 함께 사는 30대라는 현상은 대한민국의 구조가 얼마나 심각하게 청년의 삶을 지체시키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압축적 상징이다. 그리고 이들은 말없이 이렇게 묻고 있다. “우리는 과연,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인가? 아니면 선택지가 없었던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해야 할 주체는 이 사회다. 자립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곳은 바로 공동체이며, 그것이 성숙한 사회가 스스로에게 부과하는 책임이자 의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일은 분명하다.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 그것이야말로 청년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선물이며, 우리 사회가 다시 회복해야 할 믿음이다. 청년이 삶을 설계할 수 있는 사회, 선택이 가능하고 실패할 권리마저 보장되는 사회, 그 사회만이 지속 가능한 미래를 품을 수 있다. 오늘, 우리는 그 사회로 향하는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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