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우석훈 교수의 "88만원 세대"라는 책은 대한민국 청년층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당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든 청년들이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한 달에 88만원 정도를 손에 쥐는 상황은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선, 구조적 불평등의 상징이었습니다. 많은 청년이 '88만원'이라는 숫자에 자신의 미래를 투영하며 좌절했고, 사회는 이들을 'N포 세대'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10년이 훌쩍 지난 2024년, 우리의 청년들은 어떤 현실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IMF 외환위기를 겪었던 1990년대의 청년들, 그리고 '88만원 세대'라 불렸던 2000년대의 청년들의 고통은 단기적인 충격에서 그쳤다는 분석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청년들은 그들이 겪었던 고통보다 훨씬 더 깊고, 장기적인 터널 속을 걷고 있습니다. 바로 '잃어버린 세대(Lost Generation)'의 그림자가 대한민국 사회에 드리워지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세대라는 용어는 원래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절망적인 시대상을 반영했던 미국 지식인들을 지칭하던 말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학업을 마치는 시기에 심각한 경제 불황을 겪으면서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이것이 장기적으로 평생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의미하는 경제학 용어로 사용됩니다. 이들은 단순히 졸업 후 몇 년간 힘든 것이 아니라, 한 세대 전체가 삶의 궤적에서 벗어나며 개인의 삶은 물론 국가 경제 전체에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단순히 "취업이 어렵다"는 푸념을 넘어, 우리 사회가 직면한 '잃어버린 세대' 문제를 깊이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일본의 사례를 통해 잃어버린 세대가 어떻게 한 사회를 변화시켰는지 살펴보고, 지금 한국의 청년들이 겪는 고통의 본질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 문제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정치, 사회학적 관점에서 꼼꼼하게 분석해 볼 것입니다. 이 글을 통해 청년들은 자신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사회는 이들을 이해하는 첫걸음을 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잃어버린 세대의 탄생과 진화, 그리고 대한민국 사회의 고통
1. 일본의 '취업 빙하기'가 남긴 깊은 상흔: 잃어버린 세대의 원형
대한민국 청년 세대의 위기를 논할 때, 우리는 종종 일본의 경험을 소환합니다. 1990년대 초 버블 경제 붕괴 이후 약 10년 이상 지속된 일본의 '취업 빙하기(就職氷河期)'는 잃어버린 세대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 시기, 1970년대 초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태어난 청년들은 사회 진출과 동시에 전례 없는 경제적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그렇다면 일본의 청년들은 왜 '빙하기'를 겪어야 했을까요? 그 배경은 복합적입니다. 첫째, 장기적인 경제 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버블 붕괴 이후 기업들은 수익성 악화로 신규 채용을 대폭 줄였고, 특히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은 '언젠가는 경기가 좋아지겠지'라는 막연한 기대 대신 채용 시장을 냉각시켰습니다. 둘째, '단카이 주니어 세대'의 대거 유입으로 인해 청년 인구는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수요는 줄었는데 공급은 늘어나는 노동 시장의 불균형은 취업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습니다.
셋째, 일본 특유의 평생고용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한 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과거 일본 기업들은 졸업과 동시에 청년을 채용해 정년까지 고용을 보장하는 종신고용과 연공서열형 임금 시스템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경제 불황이 길어지자 기업들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이 시스템을 포기하고, 1999년 파견노동법 개정 등 정부 정책의 지원 아래 비정규직 고용을 빠르게 확대했습니다. 이로 인해 청년층은 고용의 양적 증가는 경험했지만, 질적으로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청년들에게 고실업, 저임금, 고용 불안정이라는 '3중고'를 안겨주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적 충격은 단순히 지표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은 좌절감에 빠져 도전 정신을 잃고 안정적인 대기업이나 공무원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구직 활동이나 교육을 포기한 니트족(NEET)이나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리터족(Freeter)이 사회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비혼과 만혼이 증가하면서 출산율이 하락하는 악순환도 이어졌습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들 '빙하기 세대'가 30~40대의 중년이 된 지금도 그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전 세대보다 낮은 임금과 높은 비정규직 비중을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회 전체의 소비성향 저하와 경제적 활력 감소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들의 노후 준비 부족 문제는 2030년대에 가난한 노인 인구 증가와 함께 국가 재정 부담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일본의 경험은 잃어버린 세대 문제가 얼마나 장기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하는지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2. 2000년대 '88만원 세대'에서 2024년 '잃어버린 세대'로: 대한민국 청년 고용의 민낯
대한민국은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일본의 '취업 빙하기'와 유사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IMF 외환위기 당시에도 청년 실업률이 급등했지만, 이는 단기적인 충격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청년 취업난은 단순한 경기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화되는 양상을 보입니다.
최신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4년 20대(20~29세)의 실업률은 5.8%로, 2020년 9.0%로 최고점을 찍은 이후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OECD 기준으로 볼 때, 2024년 한국의 청년실업률(6.4%)은 OECD 평균(11.1%)보다 낮은 수준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는 표면적인 상황일 뿐, 실제 청년들이 겪는 고통을 모두 담아내지 못합니다.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고용 보조지표의 상승입니다. 2024년 12월 청년층 고용보조지표3은 16.0%로 전년 동월 대비 0.5%p 상승했습니다. 이 지표는 취업을 희망하지만 적극적인 구직 활동을 하지 않는 사람들까지 포함하기 때문에, 공식 실업률 통계가 잡아내지 못하는 '잠재적 실업자'의 규모를 보여줍니다. 또한, 2025년 5월 기준 청년층 경제활동참가율은 4년 만에 50% 아래로 떨어졌으며, 고용률도 코로나19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이는 청년들이 아예 취업 시장에서 이탈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24년 20대 '취업예비군'은 100만 명을 넘어섰는데, 이는 공식 실업자의 두 배가 넘는 규모입니다. 전체 인구에서 20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12.8%에 불과하지만, 취업예비군 중 절반 가까이가 20대라는 사실은 문제의 심각성을 더욱 부각시킵니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성장 동력의 변화입니다. 과거 고용 창출 효과가 컸던 제조업의 성장이 둔화되고, 고연령층 비중이 높은 전통 서비스업 중심의 성장이 이어지면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졌습니다. 둘째, 노동 시장의 경직성입니다. 기존 정규직에 대한 높은 보호는 신규 진입자인 청년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높은 임금 격차는 청년들이 하향 취업을 기피하고 장기적인 취업 준비에 매달리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셋째, 여성 및 고령층의 고용 증가입니다. 외벌이로는 생활이 어려운 여성층과 노후 대비가 부족한 고령층이 지속적으로 고용 시장에 유입되면서, 청년층이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한민국 청년들은 '88만원 세대'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일본의 '잃어버린 세대'와 같은 구조적 굴레에 갇히고 있습니다. 이들의 고통은 단순히 낮은 임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고용 시장에서 아예 배제되거나 질 낮은 일자리에 머무르게 되는 총체적인 문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3. "나는 니트족입니다": 청년층의 좌절과 '낙인 효과'의 확산
고용 시장의 불안정성은 청년들의 삶의 태도와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구직 활동이나 교육을 포기한 니트(NEET)족의 증가는 특히 심각한 사회 문제입니다. 2024년 현재, 한국의 청년 니트족은 약 125만 명에 달하며, 이는 OECD 주요국 중 유일하게 지난 10년간 증가한 수치입니다. OECD 평균(12.6%)보다 현저히 높은 18.3%에 달하는 니트족 비중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많은 청년 인적 자본을 낭비하고 있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대졸 남성을 중심으로 니트족이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0대 후반 남성의 니트 비중은 증가하고, 대졸 남성 내 니트가 23%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는 군 복무 이후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장기간 취업 준비 활동을 하는 경향과 맞물려 있습니다. 반면 여성은 비정규직이나 단기 일자리에라도 빨리 진입하는 경향이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러한 장기 실업은 개인의 평생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낙인 효과(Scarring Effect)를 야기합니다. 실업을 경험한 사람은 실업 기간 동안 직무 능력을 쌓지 못하는 손실뿐 아니라, 고용주에게 부정적인 신호를 줘서 취업 후에도 임금에 손해를 봅니다. 실제로 연구에 따르면, 1년간의 실업을 겪은 청년들의 임금은 곧바로 취업한 청년들보다 9.8% 낮아졌으며, 실업 기간이 4년으로 길어지면 소득이 40%가량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잃어버린 세대'의 고통이 단기적인 것이 아닌, 평생에 걸친 '소득의 덫'으로 작용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낙인 효과는 개인의 경제적 어려움을 넘어, 사회 전체의 잠재성장률을 저하시키는 원인이 됩니다. 청년 인적 자본의 손실은 곧 국가 경쟁력의 약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4. 잃어버린 세대가 만드는 악순환: 세대 갈등과 재정 부담의 확대
청년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비단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삶의 불안정성은 우리 사회 곳곳에 부정적인 파급 효과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첫째, 세대 간 갈등과 부모 세대의 부담 가중입니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청년들이 부모와 동거하는 '캥거루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2016년 기준 20대 청년의 70%가 부모와 함께 살고 있으며, 30대 미혼 비중도 20%까지 상승했습니다. 부모 세대는 자녀를 부양하는 부담을 안게 되고, 이는 자신들의 노후 준비를 더욱 어렵게 만듭니다. 특히 현재의 50~60대 부모 세대는 IMF 세대와는 달리 공적연금 수급률이 낮아 노후가 불안정한 상황이기에, 자녀 세대의 불안정은 부모 세대의 '이중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둘째, 저출산 문제의 심화입니다.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은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주요 원인이 됩니다. 일본의 '취업 빙하기' 당시에도 출산율 하락이 지속되었고, 이는 장기적으로 노동력 부족과 잠재성장률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낳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입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출산율 하락폭이 확대되었으며, 이는 장기적인 국가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셋째, 국가 재정 부담의 확대입니다. 청년들의 소득 손실은 소득세 세수를 감소시키고, 소비 둔화는 부가가치세 감소로 이어집니다. 반면 실업급여나 사회보장 지출 등 정부의 지출 부담은 커지게 됩니다. 특히, 비정규직 비중이 높아 국민연금 및 사회보장제도 가입률이 낮은 '잃어버린 세대'가 고령화될 경우, 미래 정부의 재정 부담은 상상 이상으로 확대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2020년대 중반 이후 청년 인구 감소 추세가 가속화되고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면서 점차 완화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재의 '잃어버린 세대' 현상은 10년 이상 지속되어 일본보다 더 장기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대한민국 사회는 활력을 잃고 미래가 불안정한 사회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잃어버린 세대의 문제는 개인의 노력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구조적인 대책이 시급한 문제입니다.
잃어버린 세대의 고통을 끝내기 위한 사회적 대화와 정치적 용기
"88만원 세대"라는 단어가 사회에 던진 충격은 일시적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충격의 여파는 단순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더욱 심화되어 오늘날 '잃어버린 세대'의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이 세대는 IMF 세대가 겪었던 단기적인 고통을 넘어, 평생에 걸쳐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릴 수 있는 구조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들의 고통은 낮은 임금과 고용 불안을 넘어,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고, 결국 국가의 활력과 미래 잠재성장률을 갉아먹는 치명적인 사회적 비용을 초래합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본의 경험에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일본은 취업 빙하기 문제를 개인의 능력과 의지의 문제로 간주하며 대책 마련에 소극적이었고, 그 결과 지금도 '잃어버린 세대'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우리는 문제의 심각성을 조기에 인식하고, 과감하고 혁신적인 정책적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첫째, 노동 시장의 이중 구조를 해소해야 합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격차가 크고, 기존 노동 시장에 대한 보호가 높은 경직된 구조는 신규 진입자인 청년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정규직의 고용 보호를 완화하고, 비정규직의 보호를 강화하여 격차를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또한, 기업들이 기존 인력을 활용하는 대신 신규 채용을 늘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합니다.
둘째, 청년 고용에 대한 과감한 재정 지원이 필요합니다. 고용 충격이 다른 연령층에 비해 청년층에 집중된 만큼, 청년 고용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합니다. 단순히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것을 넘어, 실질적인 직업 교육과 훈련을 제공하고, 청년들이 안정적인 경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셋째, 학력 중심의 문화를 바꾸고 학력 미스매치를 해소해야 합니다. 높은 대학 진학률과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청년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오랜 시간 '취업 준비'라는 비경제활동 상태에 머물게 합니다. 고졸 인력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학벌이 아닌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노력은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 간의 소통과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잃어버린 세대' 문제는 특정 세대만의 문제가 아닌, 대한민국 전체의 미래가 달린 문제입니다. 젊은 세대에게는 희망을, 기성세대에게는 책임감을 부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해, 우리는 이 위기를 극복하고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88만원 세대"는 한 시대의 슬픈 자화상이었지만, "잃어버린 세대"는 우리 모두가 피해야 할 재앙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재앙을 막기 위해 함께 행동하고, 함께 고민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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