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학의 정체성을 묻다
행정학은 수많은 공무원 수험생과 대학생들이 한 번쯤 마주하는 과목입니다. 그런데 단순히 법과 제도를 외우는 과목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해입니다. 행정학은 법학이나 정치학과도 맞닿아 있고, 경영학, 심리학, 사회학 등과도 깊은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학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특히 ‘행정학은 과학인가, 기술인가, 예술인가?’라는 고전적인 질문은 행정학의 본질을 꿰뚫는 핵심적인 탐구 주제입니다. 이 물음은 단순한 학문적 정의를 넘어서, 행정이 현실 세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고, 그것을 어떻게 연구하고, 적용해야 하는지를 결정짓는 기준이 됩니다.
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가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한 정책을 추진한다고 가정합시다. 이때 정책의 효과를 측정하는 통계적 기법은 ‘과학’의 영역입니다. 센서를 설치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과정은 ‘기술’의 영역이고, 시민들과의 소통 방식이나 캠페인의 메시지를 디자인하는 것은 ‘예술’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행정은 다양한 속성을 지닌 복합적 실천 영역입니다.
하지만 이런 융합적 성격 때문에 오히려 정체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행정학은 자연과학처럼 객관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과학’일까요? 아니면 공무원이 전문적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실용적 ‘기술’일까요? 아니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갈등과 감정을 조율하는 ‘예술’일까요?
이 글에서는 그러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탐구하고자 합니다. 각 관점에서 행정학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왜 이러한 복합성이 오히려 행정학을 더욱 풍부하고 실천적인 학문으로 만드는지를 설명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러한 특성이 행정학 학습과 실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함께 고찰하겠습니다.
행정학의 세 얼굴 – 과학, 기술, 예술
1. 행정학은 과학인가?
(1) 과학으로서의 행정학 – 실증성과 규칙성의 추구
행정학이 과학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대체로 실증주의적 접근을 강조합니다. 즉, 객관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행정 현상을 설명하고, 예측하며, 일반화할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이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발전한 ‘행정관리론’에서 잘 나타납니다. 당시에는 행정도 물리학이나 생물학처럼 실험과 통계를 통해 정리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최적의 조직 구조’나 ‘최적의 의사결정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핵심 과제였습니다.
(2) 대표 학자와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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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드로 윌슨(Woodrow Wilson): 행정을 정치로부터 분리하여 독립적인 연구 대상이자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라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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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더릭 테일러(F. Taylor): 과학적 관리법을 통해 노동의 효율성과 표준화를 추구하며 행정을 ‘과학화’하려 했습니다.
(3) 과학으로서의 강점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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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 정책의 효과를 측정하고 예측하는 데 유리, 통계나 계량분석을 통해 근거 중심의 행정 실현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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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인간 행동은 기계처럼 예측 불가능하며, 정치적·사회적 맥락을 무시할 경우 실천적 한계 존재
2. 행정학은 기술인가?
(1) 기술로서의 행정학 – 실천적 전문성과 절차의 중시
행정학은 행정 실무를 수행하는 공무원, 정책 담당자, 관리자들에게 필요한 전문적인 기술과 방법론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예산을 어떻게 편성하고 집행할 것인가, 인사관리를 어떻게 효율화할 것인가 등의 문제는 기술적 전문성이 요구됩니다. 이때 ‘기술’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최적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한 합리적 수단의 집합입니다.
(2) 대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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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편성 기법: 품목별 예산, 성과예산, 영기준 예산 등은 모두 행정의 기술적 측면에서 발전한 기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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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기획: SWOT 분석, 비용-편익분석(CBA), 시나리오 플래닝 등
(3) 기술로서의 강점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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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 현실 적용성이 뛰어남, 교육·훈련 등을 통해 누구나 습득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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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상황과 맥락을 무시한 기계적 적용은 오히려 부작용 유발, 사람의 판단과 윤리적 고려 필요
3. 행정학은 예술인가?
(1) 예술로서의 행정학 – 인간 이해와 창의적 대응
행정 현장은 단순히 논리와 공식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시민과의 갈등 조정, 복잡한 이해관계자 조율, 예기치 못한 위기 대응에는 공감력, 창의력, 설득력이 요구됩니다. 이는 예술적 감각과 직관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며, 따라서 행정학은 예술적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대표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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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십 이론: 변혁적 리더십, 감성지능은 관리자의 예술적 소양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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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 시대: 다양한 이해당사자와의 협력과 소통이 핵심
(3) 예술로서의 강점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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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점: 유연하고 사람 중심의 행정 실현 가능, 현장성 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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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계: 주관성과 임의성의 위험, 정형화된 기준 부재
4. 복합적 접근의 필요성
현대 행정학은 위 세 가지 성격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하는 복합 학문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구분 | 주요 초점 | 대표 요소 |
---|---|---|
과학 | 객관성, 예측 가능성 | 실증분석, 통계, 계량모형 |
기술 | 효율성, 절차적 합리성 | 정책기획, 예산, 인사관리 기법 |
예술 | 인간 중심, 창의성 | 설득, 커뮤니케이션, 리더십 |
이러한 통합적 접근은 행정학을 단순한 학문을 넘어서, 공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총체적 사고 체계로 발전시켰습니다. 현대 공무원이 갖춰야 할 역량도 단일한 전문성보다, 과학적 사고 + 기술적 전문성 + 예술적 감각을 갖춘 복합형 인재상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행정학은 복합성 속에서 빛나는 실천의 학문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행정학은 과학이기도 하고, 기술이기도 하며, 동시에 예술이기도 합니다. 특정 하나의 성격으로만 정의할 수 없는 이유는, 행정학이 다루는 대상 자체가 매우 복잡하고, 인간 중심적이며,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맞다’고 단정짓기보다는, 행정학의 다양한 성격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실천적 문제 해결에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복잡성과 불확실성이 높아진 사회에서는 복합적인 역량과 사고 방식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행정학을 학문으로 공부하는 사람뿐 아니라, 현장에서 정책을 집행하는 공무원, 행정조직을 설계하는 관리자 모두가 이 ‘복합성’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 글이 그러한 이해의 출발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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