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그 본질을 묻다: 왜 현대 행정이론은 거버넌스로 향하는가
오늘날의 행정은 과거처럼 단일한 국가기구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그 기능과 방식은 크게 달라졌다. 과거의 행정이 권위적이고 명령적인 ‘통치(government)’ 중심이었다면, 현대의 행정은 점차 협력과 네트워크에 기반한 ‘거버넌스(governance)’로 전환되고 있다. 거버넌스는 이론적 전환이 아니라, 국가와 사회 간의 역동적인 관계 구조의 변화이며, 시민의 역할, 시장의 참여, 정보기술의 발전이 맞물리며 만들어낸 실질적 흐름이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세 가지 핵심 이론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 NPM), 거버넌스(Governance), 그리고 그 이후의 진화로서 등장한 뉴거버넌스(New Governance)이다. 이들 이론은 각기 다른 배경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등장했으며, 공공부문 개혁의 방향과 행정학의 학문적 진화를 동시에 반영하고 있다.
먼저, 신공공관리론(NPM)은 1980년대 영국의 대처 정부와 뉴질랜드, 미국 등에서 등장한 시장 중심의 행정개혁 흐름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이다. 그것은 관료제를 민간기업처럼 운영하자는 사고에서 출발했으며, 성과, 효율, 책임을 핵심 가치로 제시하였다. “작은 정부, 큰 시장”이라는 슬로건 속에서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경쟁을 촉진하며, 공공부문에도 기업식 경영기법을 도입하자는 움직임이 강력히 작용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NPM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회문제의 복잡성과 시민 요구의 다양성은 단일한 효율 중심 모델로 해결될 수 없었고, 공공성과 민주성의 가치가 훼손되는 부작용도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 거버넌스 개념이다. 거버넌스는 정부가 ‘혼자’가 아니라 다양한 행위자들과 함께 정책을 형성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인식에서 시작되었다. 정부, 시민사회, 민간기업, 지역사회 등이 함께 문제를 정의하고 해결하는 방식, 즉 협력적이고 네트워크 기반의 행정을 강조하게 되었다.
거버넌스는 이론적으로도 큰 전환점을 의미한다. 그것은 정부의 능력이 아닌, ‘관계’와 ‘조정’의 능력을 중시하고, 권한보다는 ‘신뢰’를 통해 운영되는 새로운 공공관리 체계를 상징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확장을 담고 있는 것이 바로 뉴거버넌스이다. 뉴거버넌스는 기존 거버넌스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민의 참여를 제도화하고, 민간과 공공의 경계를 재조정하며, 복합적 행위자들 사이의 역할과 책임을 명확히 하려는 시도를 포함한다. 이 관점은 개념의 확장이 아니라, 실천적 전략의 다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렇듯 신공공관리론, 거버넌스, 뉴거버넌스는 행정이 현실 속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이 이론들을 통해 현대 행정이 어떤 원칙을 지향해야 하는지, 어떤 위험을 경계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중심 가치로 삼아야 하는지를 고민하게 된다.
본 글에서는 이 세 가지 이론이 등장하게 된 배경, 핵심 내용, 특징, 장단점, 그리고 실제 행정에 미친 영향을 중심으로 심층적으로 살펴보며, 이론 간 비교와 현대 행정학의 방향성에 대한 통합적 시각을 제공하고자 한다. 더불어 대한민국의 행정현장에서 이들 이론이 어떻게 실천되고 있는지에 대한 사례도 함께 제시하여, 이론과 현실을 잇는 유용한 학습의 장이 되도록 구성할 것이다.
1.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 NPM)
● 등장 배경
1970~1980년대, 복지국가의 팽창과 함께 정부의 비대화 문제, 재정 위기, 비효율적 관료제에 대한 비판이 심화되면서, 정부 개혁의 필요성이 세계적으로 대두되었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 정부,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 정부, 뉴질랜드 등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추구하며 민영화, 경쟁 도입, 성과 중심 행정을 추진했다. 이러한 실천적 개혁 흐름이 이론화된 것이 바로 신공공관리론(NPM)이다.
● 주요 개념과 특징
신공공관리론은 민간부문의 경영기법을 공공부문에 도입하여 효율성과 성과를 제고하자는 이론이다.
다음은 NPM의 주요 특징이다:
항목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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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 중심 | 성과목표 설정, 성과지표 개발, 평가체계 강화 |
고객 지향 | 시민을 행정의 대상이 아닌 고객으로 인식 |
민영화 | 공공서비스의 민간 위탁, 경쟁 원리 도입 |
탈관료화 | 계층 축소, 책임과 자율 확대 |
분권화 | 중앙정부 기능의 축소 및 지방자치 강화 |
계약관리 | 계약을 통한 공공서비스 공급 및 감독 |
● 장점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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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 제고: 행정운영의 낭비 감소, 자원 배분의 합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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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과관리 확산: 조직의 책임성 강화, 예산집행의 투명성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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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참여 유도: 서비스의 질 향상과 혁신 가능성
● 비판과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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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성과 민주성이 훼손될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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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권리를 소비자의 선택권으로 전환하는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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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구조가 오히려 비효율을 초래하는 사례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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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화 어려운 영역에서의 성과평가 한계
2. 거버넌스(Governance)
● 개념의 전환
거버넌스는 더 이상 정부만이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시대가 아님을 전제로 한다.
정책 형성과 집행에 있어 다양한 행위자 간의 상호작용과 협력을 중심에 두는 개념으로,
‘정부(Government)’가 아닌 ‘통치구조(Governance)’로의 전환을 강조한다.
📌 정의: 거버넌스란 “정부, 시장, 시민사회 등 다양한 주체들이 정책 결정 및 집행에 참여하는 상호작용의 구조와 과정”을 의미한다.
● 주요 구성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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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중행위자 참여: 정부, NGO, 기업, 시민단체, 지역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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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의사결정: 위계적 통제보다 협의와 조정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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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네트워크: 이해관계자 간의 지속적인 관계 형성과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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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화와 자율성: 중앙 집중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단위의 자율성 확대
● 유형별 거버넌스 모델
유형 |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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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향식 거버넌스 | 시민과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거버넌스 |
하향식 거버넌스 | 정부 주도로 민간을 참여시키는 모델 |
혼합형 거버넌스 | 정부와 민간이 공동주체로 협력 |
● 실천적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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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정부와 시민단체가 협력한 도시재생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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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관협력 방식의 복지정책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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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참여 예산제도 등
● 장점과 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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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의 정당성과 수용성 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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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해결에 있어 현장성과 유연성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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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력 기반의 창의적 해결책 도출 가능
● 한계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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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소재 불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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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의 형식화 및 대표성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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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의 전문성과 공공성 훼손 우려
3. 뉴거버넌스(New Governance)
● 개념 등장 배경
거버넌스 이론이 제도화되고 일반화됨에 따라, ‘어떻게 더 정교하게 협력체계를 구성할 것인가’, ‘참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등장하면서 뉴거버넌스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되었다.
📌 정의: 뉴거버넌스는 “거버넌스의 협력성과 참여성을 강화하고, 공공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제도적·전략적 접근”을 의미한다.
● 핵심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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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의 제도화: 주민참여, 숙의민주주의, 온라인 공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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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민간-시민의 공동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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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합 행위자 네트워크의 구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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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 기반의 협치(co-gover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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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기반 행정혁신과 연계
● 이론적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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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본이론과의 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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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제도주의(New Institutionalism)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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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민주주의와의 통합
● 주요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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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시민참여 플랫폼 (e-people, 광화문1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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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치 조례에 근거한 주민총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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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경제조직과 협업하는 지역 거버넌스
4. 세 이론의 비교와 통합적 이해
구분 | 신공공관리론(NPM) | 거버넌스 | 뉴거버넌스 |
---|---|---|---|
중심 가치 | 효율성, 경쟁 | 참여, 협력 | 신뢰, 조정 |
구조 | 시장 중심 | 네트워크 중심 | 제도화된 협치 |
행위자 | 정부 + 민간 | 정부 + 시민사회 등 | 다중 행위자 기반 |
정책 형성 | 목표 지향적 | 상호작용 중심 | 제도+참여 병행 |
대표 사례 | 민간위탁, 성과평가 | 주민참여예산제 | 디지털 협치 플랫폼 |
● 통합적 관점에서의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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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M은 관료제의 효율성 개혁을 위한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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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버넌스는 다원화된 사회의 정책 형성 구조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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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거버넌스는 실질적 협력과 책임 구조를 제도화하고자 한다.
이 세 가지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분절된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이론이다.
현대 행정은 특정 이론 하나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실제 행정현장에서는 이 세 가지가 혼합적 방식으로 작용하고 있다.
거버넌스 시대의 행정학,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가
현대의 행정학은 더 이상 단일한 이론의 체계 속에 머물지 않는다. 오늘날의 행정은 복잡하고 다원화된 사회 구조, 예측 불가능한 글로벌 환경, 급속한 기술 발전, 그리고 시민의 권리의식 확대와 같은 다양한 요인에 의해 지속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 NPM), 거버넌스(Governance), 뉴거버넌스(New Governance)는 각기 다른 시대적 요구와 문제의식에 응답하며 발전해온 행정이론의 주요 축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신공공관리론(NPM)은 관료제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출발하여, 성과관리, 민영화, 경쟁 메커니즘을 통해 행정서비스의 품질과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였다. 공공부문에 기업 경영 원리를 도입함으로써 보다 생산적이고 책임 있는 행정을 추구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러나 효율성의 추구는 때때로 공공성의 약화를 초래하였고, 공공가치의 다양성과 시민의 권리라는 핵심 요소를 간과하는 한계 또한 분명히 드러났다.
이러한 한계를 보완하고자 등장한 거버넌스 이론은, 정부 중심의 일방향적 정책에서 벗어나 다양한 사회 주체들과의 협력과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행정 운영 방식을 제시하였다. 거버넌스는 “정부 혼자서는 더 이상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정부, 시민, 민간기업, 지역사회 등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함께 정책을 형성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실천적 지향을 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절차의 문제를 넘어서, 행정의 정당성과 수용성,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등장한 뉴거버넌스 이론은 거버넌스의 철학을 넘어 실천과 제도화의 수준으로 발전시킨 개념이다. 뉴거버넌스는 참여를 넘어서서 제도적 장치와 전략적 실행 능력을 결합하며, 신뢰에 기반한 협치(co-governance), 숙의민주주의, 디지털 참여 플랫폼 등 다층적인 협력체계를 구현하려는 시도를 포함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공공성의 회복과 지속가능한 정책 구현을 목표로 하며, 변화하는 시대 환경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장점을 갖는다.
이 세 가지 이론은 서로 대립하거나 단절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오늘날의 행정학은 이들 각각의 이론에서 제기하는 핵심 가치를 통합하고, 각기 다른 시공간과 정책 분야에 적합하게 적용함으로써 보다 풍부하고 실용적인 행정학의 지평을 열어가고 있다. 예를 들어, 성과와 효율성을 요구하는 복지 행정에는 NPM의 성과관리 요소가 유효할 수 있으며, 지역사회 재생이나 환경정책과 같이 다수의 행위자 간 협력이 중요한 영역에서는 거버넌스적 접근이 더욱 적합하다. 또한 새로운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데 있어 시민참여와 신뢰 구축을 위한 뉴거버넌스 방식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대한민국의 행정 현실 또한 이러한 세계적인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지방자치 확대, 시민참여 제도화, 공공데이터 개방, 공공서비스 혁신과 같은 여러 개혁과제는 모두 현대 행정이론의 논리를 실천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그러나 여전히 형식적인 참여에 그치거나, 책임소재가 불분명한 협치 구조, 성과지상주의에 따른 공공성의 침식 등 다양한 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행정학은 이론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통합적 시야를 요구한다. 신공공관리론이 제시한 책임성과 성과의 중요성, 거버넌스가 강조한 협력과 조정의 가치, 그리고 뉴거버넌스가 지향하는 제도화된 참여와 신뢰 구축의 필요성은 모두 현대 행정이 마주한 문제를 해결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제 행정학을 ‘정책의 집행 기술’이 아닌 ‘공공가치를 설계하고 구현하는 공동의 지식체계’로 이해해야 한다. 행정은 더 이상 정부만의 일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 전체의 지혜를 모으고, 다양한 주체들이 공통의 목표를 향해 조율해 나가는 사회적 조정의 예술이며, 민주주의의 실천이기도 하다. 앞으로의 행정학은 이러한 다층적 이론과 실천을 바탕으로, 보다 유연하고 공정하며 지속가능한 행정을 구현하기 위한 진정한 학문으로 진화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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